석사
咸安 梧谷里遺蹟 竪穴式石槨墓에 관한 硏究
목록- 저자 정현광
- 시대
- 학술지명
- 페이지
- 학위수여기관 동아대학교 대학원
- 학위논문사항 考古美術史學科 2006.12
- 발행지역
- 발행년도 2006
초록
역사고고학의 주요 연구대상인 고분은 時間과 空間의 특정 지점에서 행하여졌던 埋葬行爲의 결과로서 墳墓의 構造와 副葬遺物 및 매장 행위가 일어났던 당대의 사회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분묘의 구조와 부장유물 및 인골자료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計量的이고 質的인 分析을 실시하며 매장과 관련된 행위를 추적하여 봄으로써 해당사회의 形態 組織 發展程度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인식에서 咸安 梧谷里 古墳群의 竪穴式石槨墓를 분석하여 咸安地域 竪穴式石槨墓의 出現時期와 墓制의 特徵 대표되는 社會集團의 性格 이해에 접근하여 보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오곡리 고분군 집단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의 하나로 수혈식석곽묘의 構造的 屬性分析과 副葬品 分析을 행하여 수혈식석곽묘의 특징과 집단의 성격을 살펴본 결과 오곡리 유적 수혈식석곽묘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먼저 석곽의 長軸 方向에 따른 선후 관계에 대한 분석은 이 시기 고분 축조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기본적으로 등고선 방향에 따라 고분을 축조함으로 발생되는 장축 방향의 차이 정도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平面 形態에 따른 분석 결과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세장방형을 주류를 이루던 것이 후기로 갈수록 극세장방형의 형태로 변천해 간다고 볼 수 있으며 바닥에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면이나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ⅰ형식이 대부분 사용되고 있으며 바닥에 시상석을 설치한 ⅱ형식 중 ⅱ-a형식은 내부에서 器臺와 耳飾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오곡리 고분군 바닥시설의 형식이 비교적 상위층에 포함되는 유구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規模적인 면에서는 Ⅱ․Ⅲ․Ⅳ단계를 제외하고는 각 형식들이 전 시기에 걸쳐 고루 분포하고 있지 않아 단계에 따른 규모의 규칙적인 정형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오곡리 고분군의 장벽 하단 築造手法은 A형식에서 B C형식으로 시간적인 차이를 나타내면서 일정한 변화를 가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遺物 配置狀態에서는 각 단계별 일정한 정형성을 가지면서 시간적인 속성에 따라 순차적으로 유행하고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副葬品 分析에 따른 유물 동반의 상관관계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없어 오곡리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안라국의 중심지역에 비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격하게 분화되어진 사회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오곡리 수혈식석곽묘의 각 地域 樣式에서는 함안양식의 토기가 Ⅰ단계에서부터 Ⅴ단계까지 전체적으로 높은 비율로 나타나지만 이른 단계에서는 창녕양식의 토기가 높은 비율로 출토되고 늦은 단계에서는 고성양식의 토기가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곡리 수혈식석곽묘의 구조적인 속성들이 어느 정도 시기차를 반영하면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유구의 규모와 유물의 부장양상에서 계층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오곡리 고분군의 집단은 주변 三漆地域(칠원·칠북·칠서)에 존재하는 산성의 배치상황을 통해서도 안라국의 중심부(지금의 가야읍 일대)로의 외적(新羅) 침입을 방비하는 戰略的 要衝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漆原地域에 축조된 성들은 洛東江에서 匡廬川을 거슬러 올라 가야쪽으로의 진출하려는 적도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현존하는 산성들 가운데 성 주변에서 채집한 삼국시대 토기편과 주변 고분군과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보아 가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칠서면의 안곡(국)산성과 칠북면의 성지봉산성 칠원면의 성산성(무릉산성)과 칠원산성 등을 볼 때 이들 성의 공통점은 모두 交通路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위치에 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6세기 전반 대 안라국은 西進하는 신라와 낙동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와 관련된 오곡리 고분군의 집단은 安羅國의 통제를 받는 軍事的인 集團임을 추정케 한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