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다호리유적으로 본 弁辰走漕馬國의 형성과 변천
Formation and evolution of The Byeonjinjujomaguk by the remains of Dahori
목록- 저자 안홍좌
- 시대
- 학술지명
- 페이지
- 학위수여기관 창원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2012
- 발행지역
- 발행년도 2012
초록
가야사연구가 한·일관계사 연구에서 벗어나 가야를 주체로 한 연구로 전환하게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이다. 가야지역에 해당하는 낙동강유역에 대한 개발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야시기의 고고학 자료가 축적되었고『일본서기』에 대한 재해석이 그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로 가야 및 변한의 발전과정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그 시기 소국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이어져 지역정치집단의 성장 및 대외관계 등과 같은 한정된 지역과 시기로 접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즉 안야국과 구야국을 비롯한 변한의 12국의 위치뿐만 아니라 그 세력과 발전과 쇠퇴에 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경향속에서 창원지역의 정치집단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바로 骨浦國과 卓淳國이다. 하지만 3세기까지 창원 인근 지역의 유적으로 볼 때 골포국과는 다른 정치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창원 동읍에는 현재까지 많은 지석유적이 조사되었다. 특히 봉산리를 비롯한 신방리 용잠 등의 지석묘의 경우 아주 강력한 지배세력이 이 지역에 있었음을 상정할 수 있는 유적으로 다호리유적과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 봉산리를 비롯한 인근 지석묘집단을 바탕으로 弁辰走漕馬國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호리 지역은 지역적인 특성상 여러 교역로를 가지고 있었다. 변진주조마국은 이러한 교역로와 뛰어난 철제품들을 바탕으로 한군현 일본 그리고 변·진한 지역과 교류하면서 한반도 남부 무역의 중심지로서 발달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2세기경 국제정세의 혼란으로 인한 교역의 쇠퇴가 계기가 되어 창원분지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탁순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호리지역의 유적현황을 봤을 때 이 지역 정치세력의 완전한 몰락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부이긴 하지만 목관묘 이후에도 목곽묘를 비롯한 이후 시기의 묘가 5세기경 가야제국들이 멸망할 때까지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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