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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자료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가야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살펴보세요.

석사

加耶 成立에 對한 硏究史 檢討

목록
  • 저자 조용석
  • 시대
  • 학술지명
  • 페이지 802 5
  • 학위수여기관 明知大學校 敎育大學院
  • 학위논문사항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2003
  • 발행지역
  • 발행년도 2003

초록

伽倻의 역사는 韓國古代史에서 가장 밝혀지지 않은 것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문헌자료가 크게 부족한 데다가 또한 가야사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자세가 삼국시대라는 개념의 틀 속에서 가야를 단순히 신라와 백제의 부수적인 존재로 보고 결국 신라에 의해 병합되어 버린 소집단으로만 인식되어져 왔다는 점이다. 이에 본 논문은 『三國志』 魏書 東夷傳과 「三國遺事」 「三國史記」 「日本書紀」 에 나오는 史料와 부산과 김해지역 그리고 고령과 성주 지역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통해 가야의 성립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가야에 대한 연구가 광복이후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본 논문에서 알아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三國志」 魏書 東夷傳에는 3세기경에 弁韓 12국이 등장하고 일본의 기록에는 4세기경 5세기경의 중국측 사서에도 광범위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야의 성립 연대의 하한은 일단 3세기로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상한은 「三國史記」와 「三國遺事」 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A.D. 1세기로 비정할 수 있다. 둘째 釜山 福泉洞 古墳에서 이른 시기의 목곽묘로부터 수혈식 석실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분이 확인되었고 또 내부구조가 主副槨式에서 單槨式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밝혀짐으로써 가야 지역 전체의 묘제 변화의 추이를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金海 良洞里 古墳群은 남부가야지역의 弁辰韓墓制로부터 가야의 성립과 발전에 이르는 단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조사였다고 할 수 있다. 金海 大成洞 고분군에서는 4세 기대까지의 금관가야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셋째 광복 이후 가야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광복후 1세대의 연구자로는 李丙燾·千寬宇·金廷鶴 등이 있다. 많은 수효는 아니지만 현재의 가야사연구에 적용되고 있는 연구의 방향과 방법의 대부분이 설정되었다는데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병도는 문헌자료의 실증을 통하여 문헌적 연구의 기초를 제공하였고 천관우는 『日本書紀」에 대한 비판적 활용의 길을 열었으며 김정학은 고고학자료의 활용을 통하여 문헌자료의 보완과 검증의 길을 개척하였다. 광복 후 2세대의 연구자로는 李永植·金泰植·白承忠 등이 있다. 이들 연구의 성과는 기존의 사료해석과 연구의 종합과 재검토 『日本書紀』의 비판적 활용 다양한 고고학자료의 활용 인류학적 모델의 적용에 대한 검토 등을 들 수 있다.

목차

목차 = ⅰ 序論 = 1 Ⅰ. 加耶의 成立 = 3 1. 文獻에 나타난 加耶의 形成 = 3 2. 考古學 資料로 본 加耶 = 9 1) 부산 - 김해지역 = 10 (1) 福泉洞 古墳 = 10 (2) 良洞里 遺蹟 = 14 (3) 府院洞 遺蹟 = 19 (4) 大成洞 古墳 = 24 2) 고령 - 성주지역 = 26 (1) 池山洞 古墳 = 26 (2) 古衙洞 璧畵古墳 = 29 (3) 明浦里 古墳 = 31 3) 考古學 資料에 對한 考察 = 35 Ⅱ. 前期 加耶史의 成立과 衰退 = 37 Ⅲ. 後期 加耶史의 成立과 衰退 = 42 Ⅳ. 光復以後의 加耶史 硏究 現況 = 49 結論 = 55 ◀ 參考文獻 ▶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