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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삼국시대 건국신화의 기반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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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이주영
  • 시대 삼국
  • 학술지명
  • 페이지 263p
  • 학위수여기관 고려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국어국문학과
  • 발행지역 서울
  • 발행년도 2018

초록

건국신화의 서사를 역사적 사실의 상징화로 파악해서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기존의 보편적인 신화와 비교하여 그 앞선 기반을 탐색했다. 이것은 각 서사들의 기본적인 형태를 추론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내재된 논리의 저변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 건국신화의 서사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동해가는 것으로 보고자 했다. 하나의 신화에 대한 이본 비교부터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여러 신화들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건국신화가 한 번 만들어진 후 그대로 전승된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과 권력의 부침 속에 함께 했던 동태적인 것으로 바라봤다. 이런 두 가지 큰 관점을 통해 바라본 삼국시대 건국신화들의 신화적 기반과 역사적 전개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당시의 건국신화들은 상호간의 관련성 아래 크게 두 무리로 나누어진다. 부여를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 백제가 정통성을 놓고 경쟁하는 부여계가 첫 번째이고, 세 신화가 서로 각축하는 신라와 그에 합병된 가야의 신화가 두 번째이다. 부여와 고구려 건국신화의 신성성 내포 양상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는 천신 중심의 <동명신화>에서 태양신과 수신이 결합하는 <주몽신화>로 변해갔으며 그 알레고리를 살펴보면 수신은 사실 식물신화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강의 여신과 같은 수신으로 나타났지만 그 내적 신성성은 창조의 개념과 관련 깊은 지모신이나 식물여신, 나아가 곡모신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분리 결합하며 창조하는 여신은 그 원인자가 하나이기에 보다 원초적인 창조의 힘을 의미한다. 5세기에 동부여와 북부여가 차례로 복속됐을 때 고구려야말로 부여계의 정통임을 자처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기존의 건국신화를 재편해야 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고구려인들은 두 개의 부여를 통해 부여계의 정통을 계승하고 신화적 출자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래서 그들은 북부여와 동부여로 나누어진 두 개의 부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부여의 옛 터전에 자리한 북부여를 정통으로 삼아 계승관계를 맺고 동부여와 출자관계를 형성했다. 역사 속에서 고구려와 대립하다 패사한 대소가 이 재편에 이끌려 출자관계의 상대편으로 떠올랐다. 이로써 고구려인들은 부여계의 정통계승자로 자처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백제는 부여 또는 동명의 후손인 구태와 고구려라는 두 나라를 통해 계승과 출자를 구성했다. 그들은 부여의 동명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부여계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고구려와 출자관계 형성해 모순 없이 건국신화를 구축했다. 이렇게 부여의 동명을 그대로 계승함으로써 백제는 새로운 신성성을 강하게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혁거세신화>를 바탕으로 신라의 건국신화에 기반이 된 신화적 구도를 탐색할 때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 <선도산성모신화>였다. 선도산, 즉 서악이 신라의 왕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은 김유신 누이의 꿈 이야기로 전해지는 선류몽 설화나 고려의 건국신화라 할 <고려세계>에서도 확인이 됐다. 또한 가야 역시도 <정견모주신화>를 통해 여신과 두 아이라는 구도의 전승을 갖고 있어 이러한 구도가 국가적 경계를 넘어 한반도 남부, 최소한 신라와 가야의 영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신화적 구도 속에서 박혁거세와 알영은 천신과 지신의 이미지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신라신화의 구도는 <연오랑세오녀>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중국 측 기록을 통해서도 일월숭배가 신라에서 행해졌음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야의 정견모주와 김수로, 허황옥도 대단히 유사해서, 대모신과 두 아이라는 삼각 구도, 그리고 대모신이 산신의 형상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신라와 가야 건국신화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혁거세신화>나 <김수로신화>는 대모신과 두 아이라는 삼각 구도가 이자관계를 중심으로 전승된 것임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의 <탈해신화>와 <알지신화>는 각각 대모신에서 이어지는 지모신적 산신과 태양신 중심으로만 신성성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 이것은 원래의 신화적 구도가 점차 분해되어 개별적인 신성성 위주로 재편되어 갔으며 그 과정에서 건국시조를 낳았던 여산신들이 주류 전승에서 소외되고 남은 이자관계마저 흩어지고 말았다. 삼국 통일기에 재편됐으리라 생각되는 <김수로신화>를 제외하면 신라 건국신화들이 여산신 가계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정리할 수 있다. 왕권 교체 가운데 여산신 가계로부터 이어져왔던 이자관계에 파탄이 나타난 듯하다. 박씨 계파의 마지막 왕인 아달라왕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연오랑세오녀>는 태양과 달의 이자관계가 끝나고 대모신의 신성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왕실 출현을 의미했다. 그러나 석씨 계파 역시 곧 분열되어 눌지왕 집권 이후 권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까지 석씨와 연대한 김씨 계파는 선도산성모-알영-석탈해로 이어지는 대모신-지모신의 신성성을 전승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곧 태양신으로 변했다. 호공을 통해 박‧석‧김 세 시조를 모두 묶어 계보화를 시도했으며 곧 복속된 가야계 김씨들도 신성성 재편을 통해 신라계 김씨와 연대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성성 재편과 계보화 작업에서 마주한 반발과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통할 정체성이 필요해진 중국의 신화적 제왕들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내부의 반발을 무력화하고 동시에 당시 세계질서로 인식된 중국의 질서에 편입되고자 시도했으며 여기에 가야계 김씨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신라계 김씨와 가야계 김씨는 내부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건국신화를, 외부적으로도 소호금천씨라는 같은 조상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부여계 건국신화에서 부계로 나타난 태양신 신성성은 그것이 가진 수직적 권위로 인해 건국시조를 배척받게 만들었다. 그로 인한 배제는 건국시조가 기존 국가로부터 탈출해 새로운 신성국가를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렇게 태양신은 병존할 수 없는 권위적 성격으로 인해 기존 국가와 부정적인 출자관계를 맺게 했다. 이 출자관계는 태양신의 신성성 인정 여부에 따라 그 영역이 나누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그 인식은 외부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초래한다. 신라와 가야의 경우는 달라서 태양신은 부계도 출자관계를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점차 분열되어 가던 여산신 가계의 한 축에서 내부 세력의 일원화를 위해 소용되었다. 삼국시대에 태양신의 신성성이 외부와의 구별, 그리고 내부의 일원화를 목표로 호출된 원인은 초기에 느슨했던 연맹을 존속시키기 위한 구심력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됐다. 대타적 인식을 통한 정체성 부여나 내부 세력의 일원화는 같은 목적을 위한 방법론의 양면이다. 대모신 또는 지모신은 태양신과 달리 수평적 통합의 성격이 강조된다. 식물여신의 모자관계라는 신화적 구도를 차용한 부여계 건국신화에서 건국시조는 지모신 신성성이 육화된 존재였다. 농경과 깊이 관련된 육화된 신성성은 서로 먹고 먹히며 신성성을 공유하면서 내부 구성원의 수평적인 통합으로 나아간다. 한편, 신라와 가야 건국신화의 지모신은 성육신을 낳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남편인 태양신과 나란히 달의 신으로서 이원성의 한 축을 맡았다. 그녀들은 당대의 농경환경으로 인해 주로 산신의 형태로 숭배됐으며 이를 통해 지역성을 갖고 있었다. 각 지역의 성산에 나름대로 존재했을 여산신들을 이용하여 신라는 지방세력의 포섭하고 편제했을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부여계 건국신화에서 지모신이 내부 통합에 기여한 것과 달리 외부 확장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권위적인 태양신의 신성성이 지모신을 통해 수평적으로 전파되어 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를 국가권력의 귄위 생성과 적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폭넓게 볼 때 대모신들이 점차 밀려나면서 태양신의 신성성이 강조되어 감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단순히 가부장제라는 사회현상에 맞추어 설명하고 그칠 것은 아니다. 대모신은 모든 존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통합하고 있는 모체로 그로 인해 창세여신이 될 수 있었다. 이런 통합은 밝게 빛나는 태양신의 신성성이 등장하면서 통합은 끝나고 주체, 객체와 같은 구별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권력이 경제적 잉여생산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가장 먼저 출현했다는 견해 속에서 이러한 구별을 뜻하는 동일성의 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즉, 권력은 구별과 구분이 중요시되는 동일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출현했으며 이것은 태양신으로 상징되었다. 대모신이나 지모신이 가졌던 통합의 성격은 태양신의 동일성에 의해 제한받게 되었다. 그러나 구별만 강조하는 태양신의 동일성에 입각한 원리만으로는 국가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이제 여신의 통합은 모든 세계를 아우르지 못하고 국가 단위로 작동하게 되었다. 반대로 엄격해야 할 동일성의 원리도 통합에 의해 국가 범위로 느슨해졌다. 동일성에 제한된 통합, 통합에 의해 느슨해진 동일성이란 논리적 모순은 삼국시대의 국가들이 형성되는 데 기반이 되었으며 신화적으로는 태양신과 지모신이라는 두 개의 신성성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부여계와 신라·가야의 건국신화들은 역사적 전개에 있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다. 부여계 국가들이 하나의 신화를 둘러싸고 여러 국가가 경쟁하는 식이었다면 신라와 가야는 하나의 국가를 둘러싼 여러 신화들의 갈등이다. 이렇게 전개 과정의 경향성이 다른 이유는 역사적 정황이 달랐기 때문일 터이지만 건국신화 자체가 갖고 있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부여계 건국신화는 식물신화의 모자관계를 기반으로 태양신의 신성성을 담지하는 방식이었다. 즉, 식물신화 알레고리가 안정적으로 존재하면서 태양신의 신성성을 추가해 핵심적이자 구체적인 성육신을 건국시조로 탄생시켰다. 안정적인 알레고리와 구체적 상징물인 성육신은 신화 서사가 분열되기에 보다 어려운 조건이다. 이로 인해 부여계 국가들은 신성성을 나누기보다 하나의 정통성을 놓고 경쟁하는 데 심리적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신라와 가야는 대모신과 두 아이라는 삼각 구도에 기반하고 여기에서 대모신을 제외한 두 아이 중심의 이자관계를 건국신화의 기본틀로 삼았다. 부여계 건국신화와 달리 이들은 그 위상이 동치인 동시에 구체적 상징물이 될 자식마저 없어 서사적으로 보다 분열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여신 숭배가 산악을 중심의 지역성을 강하게 가진 것은 그 분열 단초를 더욱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오랜 기간 하나의 국체를 유지했다. 건국신화는 분열됐을지라도 국가는 분열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에서 결혼은 건국시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국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건국신화에서 그들의 논리는 건국시조가 출현해서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기 위해 건국시조가 출현하는 식이다. 여기에 두 건국시조가 출현해 결혼함으로써 신성한 국가가 건국되었다. 신라나 가야라는 국체 자체가 신성하기에 건국신화 내부 분열의 단초는 외부가 아닌 국체 내부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목차

Ⅰ. 서론 1
  1. 문제 제기 1
  2. 선행연구 검토와 범위 11


Ⅱ. 고구려신화의 신성과 역사적 논리 23
  1. 고구려신화의 양상과 비교 23
   1) 주몽신화의 텍스트 양상 23
   2) 주몽신화와 동명신화 비교 35
  2. 고구려신화의 구도와 역사적 전개 49
   1) 지모신과 태양신의 결합 49
   2) 부여 계승인식의 긍정과 부정 77


Ⅲ. 신라·가야 신화의 신성과 역사적 논리 114
  1. 신라·가야 신화의 양상과 비교 114
   1) 신라신화의 텍스트 양상 114
   2) 가야신화의 전승과 비교 140
  2. 신라·가야 신화의 계보와 역사적 전개 153
   1) 여산신 가계의 해체 153
   2) 시조 계보화 시도와 반발 197


Ⅳ. 삼국시대 건국신화의 원리 225
  1. 국가권력의 권위생성과 적용 225
  2. 역사적 전개의 신화적 기반 236


V. 결론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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