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가야제국연맹의 성립과 변천 (加耶諸國聯盟의 成立과 變遷)
(The) Information and transition of states alliance of Kaya in ancient Korea(A.D. 1C.-6C.)
목록- 저자 김태식
- 시대 삼국
- 학술지명
- 페이지 357p
- 학위수여기관 서울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국사학과
- 발행지역 서울
- 발행년도 1992
초록
기원전후한 시기에 이르러 경남해안지대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점진적인 사회통합이 진전되어, 기원후 2세기 이후로 弁辰小國들이 나타났는데, 김해의 加耶國(拘邪國·駕洛國)은 그 중의 하나였다. 3세기경에 변한지역은 김해의 가야국을 중심으로 前期加耶諸國聯盟을 이루게 되었으나 4세기 초 이후 전기가야연맹은 약화되기 시작하고 4세기말 5세기초에는 거의 몰락하여, 경남해안지대의 가야 중심세력이 해체되었다. 5세기 후반에 들어 고령지방의 伴跛國이 가야의 재통합을 새로이 주도하는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6세기초에 대가야는 소백산맥 ~ 낙동강 사이의 영역에 자기세력권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과정 중에 대가야는 522년에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어서 국제적 고립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결혼을 둘러싼 신라의 책략에 의하여 후기가야연맹은 록己呑(밀양·영산)이 529년을 전후하여 신라에게 병합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加耶 南部諸國은 대가야로부터 떨어져나와 安羅(함안)를 중심으로 다시 통합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가야남부지역은 신라·백제에 의하여 동·서로 분할 점령당하고 말았으며, 그 남부지역의 소멸로 인하여 가야는 다시 분열·약화되었다. 그 후 신라가 한강유역 경영을 마치고 가야지역 병합을 시도하자,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가야연맹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목차
서론
1. 연구사적 검토
1) 「임나」중심의 연구
2) 가야사 중심의 연구
2. 연구방법과 범위
1) 연구방법
2) 가야사의 범위
3)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Ⅰ. 전기가야제국연맹의 성립과 해체
1. 1 ∼ 4세기 가야지역의 유적 상황
2. 가락국의 시원
1) 문헌사료에서 본 가락국의 개국연대
2) 고고학자료에서 본 김해지역 소국 성립시기
3. 전기가야제국연맹의 성립
1) 소국들의 존재형태
2) 세력범위
4. 전기가야제국연맹의 해체
Ⅱ. 후기가야제국연맹의 대두
1. 5세기 가야지역의 유적상황
2. 대가야국의 성장
1) 고령의 반피국과 대가야
2) 대가야 중심의 연맹체 형성
3.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1) 소백산맥 서쪽 「기문」으로의 진출
2) 축성과 세력권 정비
4. 후기가야제국연맹의 세력범위
1) 기존설의 문제점
2) 고고학자료상의 후기가야문화권
3) 후기가야 13국의 분포
Ⅲ. 후기가야제국연맹 남부제국의 소멸
1. 6세기 전반 가야남부지역의 유적상황
2. 탁순ㆍ훼기탄의 지명고증
3. 각국의 소멸과정
1) 밀양ㆍ영산 훼기탄국의 소멸과정
2) 함안 안라국에의 백제진주
3) 김해 남가라국의 신라투항
4) 창원 탁순국의 멸망과정
Ⅳ. 530년대 안라국의 왜신관 경영
1.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
2. 백제의 왜신관 설치
3. 안나의 왜신관 장악
Ⅴ. 가야제국연맹의 붕괴
1. 6세기 중엽 가야제국연맹의 남북 이원화
2. 백제ㆍ신라의 압박과 가야제국연맹의 자구노력
1) 백제와의 제1차 교섭 (541년)
2) 백제와의 제2차 교섭 (544년)
3) 고구려와의 밀통 (548년)
3. 대가야의 신라복속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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