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고대한일관계사 연구 (古代韓日關係史の硏究)
목록- 저자 정효운
- 시대 삼국
- 학술지명
- 페이지 230p
- 학위수여기관 리츠메에칸 다이가쿠 (立命館大學)
- 학위논문사항 문화연구과(文學硏究科)
- 발행지역
- 발행년도 1993
초록
본고는 6,7세기의 동아시아 제국의 동향, 특히 신라의 한반도 통일과정에 시점을두어 한일관계 사상의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임나의 조 문제와 백강전투 문제를중심주제로 하여 당시 한반도 분석을 통해 백강전투의 문제점을 검토하고그 위에서 임나의 조 문제를 고찰하는 방법론을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힐 수 가 있었다. 하나는 백강전투에 있어 왜군파견의 목적은구원보다 신라의 정벌에있었으며 이는 7세기 동아시아 정세의 역사적 흐름과 일치한다는 사실과 는신라가 왜에 임나의 조 를 바쳤다는 사실은 6. 7세기에 실재한 역사가 아니며, 일본서기의 조에 관한 기사는 한 간지 내려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또한, 그 외에도 첫째, 백제왕자 풍장이 의자왕의 아들로 인질로서 왜에간 것이 아니라, 무왕의 아들로 백제의 왕위계승과 대고구려정등으로 왜에정치적 망명을 했다는 사실. 둘째, 백강전투 이후에 보이는 당의 사신 곽무종 등이 염 목적은백제부여륭과 신라 문무왕과의 웅진회맹에 있어 왜왕을 참가시키려는 데 있었고,이에당의 사신 유덕고의 파견은 당고종의 태산봉선 의식에의 참가요구였다는점. 세째, 사료상 명확한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나의 조와 관련하여기록되어 있는 추고 8년, 30년조의 신라정벌제는 흠명기의 가야 멸망과관련된 사건이라는 사실. 네째,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 임나부흥어는 본시 금관가야를 지칭할때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끝으로 추고천황의 시기에 대신라 강경 이를 계기로고대 일본의 국가형성이 신라와의 긴장관계에서 형성되었다는 종래 일본역사적 인식에는 잘못이 있다는 점 등을 밝혀내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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