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연구논문) 가야ㆍ신라시기 부산지역 대왜교류의 변화와 발전
목록- 저자 선석열
- 시대
- 학술지명 항도부산
- 페이지
- 발행기관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 ISBN/ISSN
- 발행지역
- 발행연도 2013
초록
본 연구는 삼국시대 부산지역의 대왜교류에 대해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삼국시대의 부산지역의 독로국은 가야권에 속해 있다가 신라권으로 편입되었다. 신라는 왜와 처음에는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7세기에 이르러 친선관계로 반전되었다. 따라서 부산지역의 대왜교류도 세 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가야시기 부산지역의 대왜교류에 대한 문헌 기록이 거의 없어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살펴보고, 『삼국사기』와 『위지동이전』 그리고 『진서동이전』의 기록과 부합한 사실을 밝혔다. 3세기말 4세기초에 부산의 독로국은 임나가라 연맹왕국의 주축세력으로 존재하였다. 이 시기 대왜교류는 낙동강하류역과 북부구주가 중심지였다. 4세기 후반부터 백제-가야-왜 동맹이 성립되자 교류의 중심은 畿內지역으로 옮겨졌으나, 북부구주는 여전히 교류의 거점 역할을 유지하였다. 400년 광개토왕의 남정으로 임나가라연맹이 약화되어 세력의 중심은 독로국으로 옮겨졌으나, 대왜교류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다음은 신라시기 부산지역의 대왜교류이다. 이 시기에는 『삼국사기』에 관련 기록이 상당수 있어서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5세기 중엽 독로국은 신라에 편입되고 거칠산군으로 편제되었다. 신라는 왜와 적대관계에 있었으므로, 부산지역의 대왜교류도 경제적?문화적 성격의 교류보다 정치적?군사적 성격의 교류로 변화해 갔다. 463년 왜인의 삽량성 공격으로 인하여 신라는 남쪽 변경의 전략적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부산지역에 두 성을 쌓았고, 493년에는 이들을 군진으로 개편하였다. 6세기 초부터 신라와 금관가야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였으나, 『일본서기』의 기록과 달리 왜는 낙동강하구로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6세기에 이르러 부산지역은 대왜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7세기 부산지역의 대왜교류이다. 이 시기의 대왜교류에 대한 자료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많은 기록이 있다. 7세기에 이르러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동이 일어났다. 신라와 왜의 관계는 송사외교라는 친선관계로 반전되어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신라는 대왜외교나 대왜교역을 행할 때 부산지역이 중요하였다. 신라의 대왜교통로는 경주-울산-기장-형변-대마도-이키-하카타로 이어지는 해상교통로가 이용되었다. 부산의 기장 해안과 형변은 중요한 중간기착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초록(영문)
今度、硏究は三國時代的釜山地域的對倭交流について、三時期で分けて考察した。三國時代的釜山地域的瀆盧國は、加耶圈に屬しているが、新羅圈へ編入去れた。はじめに、新羅は倭と敵對關系にあったが、七世紀になると、親善關系に反轉された。從って、釜山地域的對倭交流も三度的變化を嘗めた。加耶時期的釜山地域的對倭交流について的文獻記錄がめったにない的で、考古學的な硏究成果を通して探し、 『三國史記』と 『魏志東夷傳』及び 『晉書東夷傳』的記錄と符合したことをあきらかにした。三世紀末~四世紀初になると、釜山的瀆盧國は任那加羅聯盟王國的主軸勢力に存在した。こ的頃、對倭交流は洛東江下流域と北部九州が中心地であった。四世紀後半、百濟-加耶-倭的同盟を成立になると、交流的中心は畿內へ移動したが、な書北部九州は交流的據點的役割を保っていた。400年、廣開土王南征によて、任那加羅聯盟王國は壞れて、そ的勢力的中心は瀆盧國へ移されたが、對倭交流的中心は他的地域になった。次に、新羅時期的釜山地域的對倭交流である。こ的時期的對倭交流について的資料は、 『三國史記』に關連記錄がかなり見元る的で、五世紀中頃、瀆盧國は新羅へ編入去れて、居柒山郡に編制された。新羅は倭と敵對關系に置かれた。それゆ元、釜山地域、?ち、居柒山郡的對倭交流も經濟的?文化的性格的交流というよりも、政治的?軍事的性格的交流に變わって行った。463年、倭人的?良城的攻擊によて、新羅は南方邊境的戰略的な重要性を新たに認識しながら、釜山地域に二つ的城を築いて、493年にはこれら的城を軍鎭へ的改編が行書こなわれた。六世紀初以來、新羅と金官加耶的間に戰爭が發生した的が、 『日本書紀』的記錄と違って、倭は洛東江河口に向かって來ていなかった。こ的ために、六世紀的居柒山郡では對倭交流が行なわれていなかった。書わりに、七世紀的對倭交流と居柒山郡的役割である。こ的時期的對倭交流について的資料は、 『三國史記』と 『日本書紀 』に多く見元る。七世紀になると、東アジアに國際情勢的變動が起った。新羅と倭と的關系は、送使外交という親善關系へ反轉が書こって、交流が盛んに行なわれた。新羅は對倭外交と對倭交易を行なう時、居柒山郡は重要な地域であった。新羅的對倭交通路は慶州-蔚山-機張-兄邊-對馬島-壹岐-博多に續いている海上交通路が利用されていた。居柒山郡的海岸と兄邊は重要な中間寄著地的役割を隨行した的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