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학술자료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가야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살펴보세요.

역사학

안라국의 대왜교역로에 관한 검토

安羅?の?倭交易路に?する?討

목록
  • 저자 이연심
  • 시대
  • 학술지명 한국민족문화
  • 페이지 905
  • 발행기관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ISBN/ISSN
  • 발행지역
  • 발행연도 2014

초록

본고에서는 문헌 및 고고 자료를 바탕으로 안라국과 야마토 정권의 인적·물적 교류 양상과 더불어 양국의 교역로에 관해서 검토해 보았다. 안라국은 5세기 이후 대가야와 함께 가야제국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가야제국의 대왜교역체계 재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가야제국의 대왜교역체계가 다원화되면서 안라국도 그 이전시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왜교류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즉 5세기 이후 안라국은 독자적인 대왜교역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양상은 6세기 전반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6세기 전반 『일본서기』에 안라국에 관한 기록이 다수 확인된다는 것과 함안 지역에 왜계고분이 확인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6세기 전반 안라국 외곽지역에서 확인되는 왜계고분은 당시 안라국에서 활동한 왜계인물인 ‘임나일본부’와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안라국과 야마토의 정권의 교역에 있어서 물적 교류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5세기 이후 안라국은 일본열도와 활발하게 교류하였는데, 문헌 및 고고 자료를 바탕으로 안라국의 대왜교역로에 관해서 검토해보았다. 5세기 이후 안라국은 진동만을 이용하여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직접교역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즉 당시 안라국의 대왜교역로는 진동만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北部九州를 거쳐 瀨戶內海를 이용하여 畿內로 들어가는 경로였다고 할 수 있다. 안라국과 야마토 정권의 교역은 점차 증가되면서 물적교류 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안라국과 야마토 정권의 인적 교류의 산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왜계고분과 안라국에서 활동한 왜계인물이다. 그렇다면 안라국과 야마토 정권의 인적 교류는 기존의 교역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안라국에서 활동한 근강모야신의 귀국 과정 등을 감안하면, 안라국의 또 다른 대왜교역로로서 함안-진동만-남해안-동해안연안-福井縣-近江-畿?로 상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가야의 대왜교역체계 개편과 안라국 3. 안라국의 대왜교역로 4.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要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