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학술자료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가야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살펴보세요.

역사학

가야 아리사등(阿利斯等)의 외교와 행적

The diplomacy and emigration of Arisadeung(阿利斯等)

목록
  • 저자 장인성
  • 시대
  • 학술지명 백제학보(The Baekje Hakbo)
  • 페이지
  • 발행기관 백제학회
  • ISBN/ISSN
  • 발행지역
  • 발행연도 2015

초록

『일본서기』에만 보이는 가야 阿利斯等은 후기 가야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522년대가야와 신라가 혼인외교를 결성한 후, 대가야 왕은 신라에 대해 저자세를 취하고 신라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529년 가야 제국에 있던 신라 왕녀의 종자들에게 신라 의관을 입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신라의 영향력이 직접 가야 제국에 확대되었다. 阿利斯等은 이러한 상황을 목도하고 신라에 반발하고 반신라적인 외교를 펼쳤다. 阿利斯等은 안라의 한기로서 안라의 외교를 책임지고 있었던 인물로 보인다. 그는 매우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529년 4월 직접 왜에 건너가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는 왜에서 안라에 파견된 近江毛野臣이 그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자 왜로 귀국할 것을 종용하고, 近江毛野臣을 축출하기 위해 신라와 백제에 군대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왜의 세력을 끌어 들인 외교가 실패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외교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왜로 이주하게 되었다. 阿利斯等이 이주한 곳은 筑紫君磐井의 세력 기반이었던 火國 葦北지역이었다. 이 지역으로 이주가 가능했던 점은 이와이 세력과도 교섭을 하였기 때문이다. 왜로 이주한 후 阿利斯等은 阿利斯登으로 표기되었다. 이와이 난이 평정된 후인 535년경에 阿利斯登은 火葦北國造刑部채部를 맡게 되었다. 火葦北지역의 國造인 阿利斯登이 大伴部에 속한 刑部채部를 담당한 것이다. 이에 따라 阿利斯登은 왜의 大伴金村大連을 我君으로 불렀는데, 이러한 군신관계를 二重的 君臣關係라고 부르고자 한다. 二重的 君臣關係는 왜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에도 이중적 군신관계는 중요한 문제였다. 천하의 관리는 모두 천자의 신하라는 이념이 작용했으나 실질적인 군신관계는 직접 발탁하여 임명한 관계에서 형성되었다. 1차적 군신관계는 황제와 그가 직접 대면하고 임명한 관리 사이에 작동하였고, 2차적 군신관계는 관부의 장과 그가 임명한 속리 사이에 형성되었다. 개별적이고 인격적으로 결합된 이러한 관계는 ‘策命委質’이란 의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되었다.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이중적군신관계는 6세기 말에 중국을 통일한 수의 개혁조치로 점차 해결되었다. 이중적 군신관계는 6세기 대동북아시아 각 정권이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초록(영문)

Arisadeung(阿利斯等) who was mentioned in NihonShok(i일본서기) played the important diplomatic role A.D. 529. Baekje invaded the sumjingang region of Gaya to increase their influence, and occupied the Dasajin harbor(다사진). Wa recognized Baekje’s occupation of Dasajin to enhance the import of advanced culture from Baekje. Daegaya concluded matrimony diplomacy with Silla to resist two state. King of Daegaya ordered to change the costume of many servants of Silla’s princess into Silla’s costume in order to accept the influence of Silla’s power. Arisadeung, Hangi of Anra opposed the measure of King of Daegaya, let many servants of Silla go back to Silla. Arisadeung declared against the ambition of Silla to influences everal state of Gaya(加耶諸縣). Arisadeung went to Wa to help Anla resist Silla and Baekje A.5D3.0. Ahuminokenanowumi(近江毛野臣) who was in Anla didn’t help Arisadeung, Arisadeung dispatched an embassy to Silla and Baekje to help Anla. But Silla and Baekje demanded to capture Ahuminokenanowumi(近江毛野臣). Arisadeung who was responsible for Ahuminokenanowum(i近江毛野臣) emigrated Wa with him A.D 530. Wa appointed Arisadeung as Kininomiaytsuko(國造) of Asikita(葦北) region in Hi Kuni(火國) A.D. 535 or thereabouts, because their family occupied the power in that region. The one reason that the family of Arisadeung seized the power in that region was related with Iwai(磐井) power who conflicted with Wa regime. The other reason was related with Otomonokanamuranooom uraji(大伴金村大連) who played important role in Wa regime. So Arisadeung who was appointed as Kininomiaytsuko(國造) of Asikita(葦北) in Hi Kuni(火國) by the King of Wa called Otomonokana muranooomuraji(大伴金村大連) as his sovereign. This reflected dual relationship of sovereign and subject at that time. Dual relationship of sovereign and subject also was the feature of era of the divided age(魏晉南北朝) of Chinese history.